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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_박근혜 대통령 회고록 1권, 2장 외교안보

최재욱튜브 2024. 2. 29. 15:01

사드 
(THAAD) 

 4차 핵실험의 파장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로 이어졌다. 미국은 내 임기 초부터 사드 배치를 요청했다.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부터 주한미군 등 주요 전력을 지키려면 수도권 외에 방어가 어려운 기존 패트리엇 미사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한반도 남부에 사드를 추가 로 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주한미군이 사드를 배치하면 한국도 탄도미사일 방어력을 대폭 증강할 수 있으니 군도 환 영했다. 

 하지만 중국의 반발이 워낙 강력해 우리 정부로서도 무조건 수락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3노(NO)', 즉 '요청받은 적 없고, 협의한 적 없고, 결정한 적 없다'였다. 

사드 배치 결정, 
중국은 반발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이제 현실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사드 배치는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중국과의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 도 컸다. 중국은 한국에 주한미군의 사드가 설치되는 것을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 편입으로 규정하면서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드 도입을 수락한 것은 어디까지나 고도화되고 있는 북핵 때문이란 점을 중국에 설명해야 했다. 
 1월 6일 핵실험 직후, 나는 이런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쉽게 되지 않았다. 시 주석과 통화가 된 것은 핵실험으로부터 한 달가량이 지난 2월 5일이었다. 시 주석은 '대화와 협상'이 중요하다 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4차 핵실험에 이어 2월 3일 지구 관 측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말이 지구 관측 위성이지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통보였다. 북한의 도발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선 중국의 적극적 자세가 꼭 필요했는데, 시 주석의 답변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2월 7일 오전에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광명성호 로켓을 발사했다. 설 연휴 아침이었다. 우리도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날 한·미 양국은 국방부 정책실장의 브리핑을 통해 사드 배치 논의를 공식화했다. 다만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북한을 견제하는 용도로만 운용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월 8일 한·미 양국은 사드 배치를 확정하고 부지 물색에 들어갔다. 야당과 일부 언론을 통해 사드 전자파에 대한 과도 
한 우려가 퍼지면서 후보지로 거론된 곳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괴담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당혹스러웠다. 정부에서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지만, 지난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도 그랬듯이 한번 퍼진 괴담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야당 의원들은 시민단체와 합세해 현지에서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추겼다. 
 그래서 7월에는 국방부에서 미국 측의 양해를 얻어 출입기 자단을 미군 괌 기지로 초청했다.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를 직접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측정 결과 최대치는 ㎡당 0.0007W로 나타났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치인 m²당 10W의 0.007% 수준이다. 전문 가들에 따르면 이 정도의 전자파는 일상생활
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즉, 사드가 배치되는 포대에서 민가의 거리가 약 1.5km인 점을 고려할 때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는 주민 건강과 농작물 등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그럼에도 부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된 대구, 김천, 성주 등에서는 격한 반발이 쏟아졌고, 해당 지역의 여당 의원들마저 공개적으로 난색을 드러냈다. 경북 경산이 지역구인 최경환 의원조차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김해 신공항 추진)로 대구·경북 민심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사드가 대구·경북에 배치되면 지역 민심 악화를 더 가중시킨다"
는 걱정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미 양측은 고민 끝에 2016년 7월 13일 경북 성주군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확정했다. 사드의 방어망을 극대화하려면 국토에서 너무 위로도, 너무 아래로도 치우쳐서는 안 되고, 바다에 인접하는 것도 실효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경북 성주에는 일명 '성주 포대'라고 불리는 호크 미사일 발사대와 레이더 등이 이미 배치돼 있는 만큼 최적지로 꼽혔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의 주민 공청회도 없이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사드는 국익과 안보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고, 이왕 한다면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핵 도발 수위가 고도화되
는 만큼 서두를 필요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후임 정권 에 외교적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고려도 있었다. 사드 문제는 내 임기 내에 마무리짓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경북 성주로 확정된 후로도 부지 선정은 순탄치 않았다. 결국 롯데 측의 배려로 2016년 9월 30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 위치한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 부지를 확보하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국방부 소유 부동산과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 문에 중국에 진출했던 롯데는 경제적 보복 조치를 당하는 등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게 됐다. 그렇게 손해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롯데 측은 “기업으로서 국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하게 보여줬다. 롯데가 용기 있는 결정을 해준 것에 대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겪으며 사드 배치가 확정됐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사드 반대 진영의 시위 때문에 통행이 어려워 그곳에 있는 미군부대가 필요 물자들을 헬리콥터로 나르는 형편이라고 들었다. 미군 관계자가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게 동맹국 맞냐'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안타까웠다. 그나마 최근에 이런 문제가 풀렸다고 하니 다행이
다. 
 이렇게 사드 배치가 진행되자 예상대로 중국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 측에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애썼다. 중국은 이미 관측 거리 5000km의 안테나를 배치 해 한반도 전역을 볼 수 있지만, 사드의 안테나 관측 거리는 최대 1000km 정도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중국 단둥 정도에 도달하는 수준이다. 그런 만큼 사드는 어디까지나 대북 방어용 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덕분에 사드 설치가 확정된 후에도 중국과의 관계는 당초의 우려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사드 부지를 경북 성주로 결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김장수 주중대사는 8월 18일 리바오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과 면담을 갖고 중국 정부 측의 메시지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한국 측의 사드 배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그간 쉽지 않게 발전시켜 온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이를 더욱 진전시켜 나가기를 기대
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해 양측이 양국 관심사
를 모두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소통과 조율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한·중 관계 발전과 역내 평화 안정 유지를 위한 공동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9월 초 중국 광저우에서 예정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국가 및 국제기구에서 양자 정상회담을 요청하고 있어 일정 조율에 어려움이 있지만, 중국 정부는 한국을 매우 중시하고 한·중 교류 소통 이해 증진이 계속돼야 한다는 기본 입장에 따라 한·중 정상회담을 적극 검토하고 조율 중인 데, 결정되는 대로 즉시 알리겠
다고 했다. 
 이런 물밑 과정을 거쳐 2016년 9월 4~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11차 G20정상회의 때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과 가진 마지막 만남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시 주석에게 “이 크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말 문을 연 뒤 “우리의 자위권을 위해서는 지금 사드를 설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약 북한의 핵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도 사드가 필요없다. 북한의 핵이 사라진다면 우리도 사드를 설치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중국도 사드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원인(북핵) 제거에 동참해 사드가 필요없도록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고, 유엔 안보리의 관련 결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또 이 와 관련해 열린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논의에서도 북한이 두 번의 핵실험과 여러 차례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사드 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대북 문제 협력은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라오스 순방 중 벌어진 
북한의 5차 핵실험 기습 

 그러나 북한은 고삐 풀린 말처럼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2016년 9월 9일, 4차 핵실험으로부터 8개월가량이 지난 때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나는 G20 회의를 마치고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 중이었다. 북한은 나흘 전인 5일에도 동해상으로 노동미사일 세 발을 발사한 상황이었다. ㅏㅏㅡ

2016년 7월 14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북한 탄도미사일 방어개념도를 살 펴보고 있다.

 


 상황이 급했기 때문에 그때 머물고 있던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등과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후 한·라오스 정상회담을 진행한 다음 한 · 라오스 비즈니스 포럼 등은 불참 양해를 구한 뒤 급히 귀국했다. 엄중한 안보 상황을 고려해 11월 칠레에서 열리는 제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에도 불참하고 황교안 국무총리를 대신 보내기로 했다. 외국 순방을 가면 외교안보수석 등이 동행하지만, 국가안보실장은 국내에 남는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청와대의 실장들과 인사하는데, 안보
실장에게는 “저 없는 동안 나라를 잘 지켜 주세요”라고 말 하곤 했는데 이때는 정말로 그런 상황이었다.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5차 핵실험 보고를 받은 순간 '이제 북한과는 모든 게 끝났다. 우리가 더 이상 뭘 더 할 방법 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통령 취임 전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대북 정책의 '투 트랙'을 제시했다. 국제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을 지속하되 북한에 대화와 협력의 길도 열어두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 포기한다면 그 대가로 많은 지원과 공동 번영이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북한 주민과 북한정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고, 이면에 어떠한 계산도 없었다. 임기 동안 의미 있는 관계 개선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북한은 정반대의 길로만 갔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16년에만 무려 16차례에 걸쳐 24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것은 김정일 정권하 18 년간 발사한 16발
보다 더 많았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
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5차 핵실험 직후 이례적으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적극 동참한 가운데 북한의 석탄 수출을 제한해 경제를 압박하고 외교관 숫자를 줄이도록 하는 안보리 결의 2321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16년 10월 이후 나는 국내 정치의 급류에 휘말려 북핵 문제를 컨트롤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그해 12월엔 국회 탄핵으로 대통령직 수행마저 중단됐다. 하지만 나는 이른바 '최순실 사태'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북핵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이후 북한은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까지 감행 하면서 핵 능력 고도화를 꾸준히 추진했고, 지금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까지 목전에 두고 있다. 북한 정권이 우리의 선의를 외면한 채 핵 개발에 명운을 걸겠다면, 우리는 주변 우방국들과 전략적 공조를 더욱 강화해 안보를 지키는 수 밖에 없다. 
 간혹 북한이 도발하더라도 우리가 손을 내밀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위험한 주장이다. 인류를 위협하는 핵 확산을 막자는 움직임 속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연대해 왔고, 유엔 안보리의 규제들이 겹겹ㅏ이 쌓여 왔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 개발은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평화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는 국제사회
의 동의 없이 우리 단독으로 풀거나 완화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