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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평소 알던 진영이 아니었다"_박근혜 회고록 1권, 1장 정

by 최재욱튜브 2024. 3. 25.

“그는 내가 평소 알던 
진영이 아니었다" 

 연금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크다. 여당도 소극적이다. 내가 임기 초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 세대들은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자녀 교육 등으로 지출이 많다 보니 정작 은퇴 후에 본인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어려운 분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주자는 차원에서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9만 4000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제도가 2008년 부터 도입됐다. 이와 관련해 나는 2012년 대선 때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공약을 내걸었다. 

'65세 이상 노인 월 20만 원' 
공약 못 지킨 이유 

 그런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재정 상황
이 예상했던 것 보다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전 이명박 정부에서 세수(稅收)를 너무 크게 잡아놓고 국정을 추진해 내 임기 첫해부터 세입세출이 마이너스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공약을 무조건 지키겠다고 고집하기 어려웠다. 내가 욕을 먹더라도 공약을 손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관련 전문가들과 상의한 결과 소득 하위 70%의 노인을 대상으로 매달 10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당연히 야당을 중심으로 반발이 나왔다. 국민연금과 연계하면 기초연금이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증가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어서 기초연금은 다소 줄더라도 국민연금 쪽 증가분을 고려하면 전체적인 연금액은 손해라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연금제도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라 곳간이 충분하다면 모르겠지만, 사정이 어려운 게 확인된 만큼 국가가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전액을 지급할 수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무리하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기초연금의 토대가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가입 기간이 아니라 소득에 연계시키자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 자들과 이야기해보니 자영업자 소득을 보겠다며 전수조사를 하기 시작하면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행정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입 기간으로 기준을 잡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이 맞았다고 본다. 
 어쨌든 공약을 100% 지키지 못한 셈이 됐다. 공약을 만들 당시 정확한 자료를 다 받지 못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지만 국민께 송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내 공약을 지키겠다고 재정을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2013년 9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축소와 관련 해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 이라고 사과했다. 이어 다음 날도 대한노인회 임원들과 노인 복지단체연합회 관계자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면서 "당초 계획했던 것처럼 모든 분께 다 드리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서 저도 참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거듭 사과했다. 
 당시 이 문제는 연일 언론을 뒤덮었다. 그런데 야당도 야당 이지만 주관부처 담당자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축소에 반대한 게 문제를 더 크게 확대했다. 진 장관은 "보건 복지부 장관으로서 이걸 어떻게 국민한테 설득하라는 말이냐"며 거세게 반대했다. 진 장관은 내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비서실장을 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부위원장으로서 정책을 다듬었다. 진중하고 일 처리도 무난하기 때문에 복지 예산처럼 중요한 것을 챙기는 것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진 장관의 거친 반발은 굉장히 놀랍고 뜻밖이 었다. 
 나는 진 장관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조원동 경제수석을 보내 설득을 시도했으나 진 장관은 끝내 자신의 의견을 굽히 지 않았다. 결국 진영 장관은 2013년 9월 27일 e메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어 복지부 출입 기자들에게도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사임하면서'라는 제목의 e메일을 보내 사퇴를 공식화했다. 장관이 청와대와 충분한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의를 발표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진영 장관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으로 복지 분야 국정과제 수립에 깊게 관여했던 그가 기초연금 처리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청와대와 의견이 다르다며 장관직을 그만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정홍원 총리를 통해 사 직서를 반려했다. 
 정 총리는 27일 보도자료를 내 "현재 새 정부 첫 정기국회가 진행 중이고 국정감사도 앞두고 있으며, 복지 관련 예산 문제를 비롯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도 많다"며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장관의 사표를 받을 수 없어 반려했다"고 밝혔다. 
이는 내가 진 장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진영 장관 면담 요청, 전달 못 받았다. 
끝내 아쉬움 

 하지만 진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복지부로 출근도 하지 않았고, 국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다고 보고 9월 30일 진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나는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진 장관의 처신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국민을 대신해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와 국무위원, 수석들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비판을 피해 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당당하게 모든 문제를 해 결해 낼 수 있다는 의지와 신념이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입니다." 

 진 장관이 사표를 내기 전에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불발됐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언론을 통해 나왔는데, 사실 나는 당시 그런 요청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 돌이켜 보니 그때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끝내 남는다. 나중에 진 장관은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가 4선 고지를 밟았고,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2013년 진장 관이 복지부 장관을 그만둔 뒤 나는 그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인기 없던 담뱃값 인상, 
청소년 흡연 차단 위해서였다 

  내 임기 때 추진한 인기 없는 정책을 꼽으라면 담뱃값 인상 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담뱃값을 인상하겠다고 하자 세금을 더 거두려고 추진한다는 원성이 높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담뱃값을 인상한 것은 성인도 성인이지만,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을 담배로부터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청소년 흡연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고3 학생들의 경우는 흡연율이 25%, 즉 4명 중 1명이 흡연을 했다. 청소년 때부터 흡연을 시작하면 장기간 니코틴이 쌓이면서 건강상 악영향을 주게 된다. 정부 관계자, 전문가들과 논의해보니 청소년을 흡연으로 부터 거리를 두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담뱃값 인상이라 고 했다. 
 물가는 계속 올랐지만, 저항이 크다 보니 담뱃값은 거의 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담뱃값이 너무 저렴해졌고,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정부에서 담뱃값을 500원 올린다고 했을 때 '왜 서민을 힘들게 하느냐'고 반대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청소년 흡연율 문제라는 게 이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이제는 청소년들의 흡연율 문제가 심각해진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으로 1년에 7조 원가량이 투 입되는데, WHO에 따르면 우리는 적극적 금연 정책을 안는 '금연 후진국'에 속해 있었다.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우리나라의 금연정책 통합지수'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통합지수를 비교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27개국 가운데 25위를 차지했다. 흡연 경고 정책, 담배 광고 규제 분야도 하위권이고, 금연정책에서 우선순 위가 높은 담배가격정책지표에선 평가 가능한 34개국 가운데 한국이 최하인 34위를 차지했다. 
 처음에는 나도 담뱃값을 올리기보다 금연구역을 넓히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음식점을 비롯해 당구장 · 체육시설 등의 금연 구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것은 간접흡연 방지에 초점을 둔 제한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담배를 사지 못하게 하는 게 요점이다. 그래서 2015년 1월 1일부터 담 배 가격도 2000원이나 올렸고, 담뱃갑 경고 그림도 의무화 하도록 했다. 이것도 청소년들한테는 굉장히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을 거쳐 청소년 흡연율이 2012년 11.5%에서 2016년 6.3%까지 감소했다. 
 이처럼 흡연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자는 것이 당시 담뱃값 인상의 근본적 이유였다. 세금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문제였다. 청소년과 국민 건강 문제가 없었다면 굳이 약간의 세금을 더 걷겠다고 그렇게까지 미움받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없었다. 
 2013년 추진한 세법개정안도 담뱃값 인상 못지않게 저항이 큰 정책이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중·고소 득자를 중심
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됐다는 반발이 나왔다. 
 기존에 의료비와 교육비, 기부금, 보장성 보험료, 연금저축·퇴직연금 등 특별공제와 인적공제 항목을 소득공제로 적용하던 것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소득공제는 연 소득에서 공제항목별 지출을 비용으로 인정하고 이를 차감 한 뒤 과세기준이 되는 과표기준을 산정한다. 그래서 공제항 목에 돈을 많이 지출하면 과표기준이 낮아진다. 그 비용은 소득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 소득이 8000만원 인사람이 교육비 등에 2000만원을 썼다면 연 소득을 6000만 원으로 산정하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소득 공제를 하면 아무래도 저소득층보다 교육비나 의료비 · 보험료 등에 많이 투자하는 고소득층의 소득공제 혜택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면 세액공제는 소득 전체를 과표기준으로 삼는다. 8000 만원의 연소득에 대해 일단 세금을 거둔 다음 교육비나 의료비 등 공제되는 항목별로 쓴 돈의 일부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일단 과거보다 소득세를 더 많이 내야 했고, 이후 교육비나 의료비 등에서 과거만큼 지출하지 않으면 돌려 받는 금액은 줄어들게 됐다. 또 과표를 매긴 소득 수준이 전보 다올라가다 보니 지출을 과거보다 늘리지 않으면 연말정산에 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중·고소 득층에선 "세금이 올라갔다"며 인기가 없는 정책이 됐다. "보수정당이 이럴 수 있느냐. 배신감을 느낀다"는 불만도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국회에서 세 법개정안을 설명하면서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바 람에 논란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조원동 수석의 표현은 부적절한 측면이 있었을 뿐 아니라, 애초에 내가 이 정책을 추진한 목적도 잘못 설명한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정책을 추진한 것은 과세 형평성 때문에 시작한 것이지, 세금을 올리려고 했다면 이렇게 꼼수 비슷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임기 중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 중 하나는 국가 재정 건전성이었다. 한국은 서구보다 복지 정책의 도입 속도가 무척 빠르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급속히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다 장래의 통일에 대비한 잠재적 재정 수요도 만만치 않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정부는 안정적 세입 기반을 확충하도록 노력해야지, 지금 돈이 있다고 펑펑 쓰다가는 훗날에 큰 고난을 겪게 된다. IMF 사태도 우리나라 재정이 그런대로 괜찮았기 때문에 극복을 한 것이지, 빚덩어리를 안고 있었으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곳간을 착실하게 챙겨야 한다. 나는 경제 참모들에게 늘 GDP 대비 국가부채율이 40%를 넘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능 하다면 30%에 맞추자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2016년 초과 세수 10조원 쌓였는데... 국가부채율 50% 넘어 

 임기 첫해인 2013년에는 국세 수입 증가가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많은 노력을 통해 국세 수입 증가율은 2014년에 1.8%, 2015년 6.0%, 2016년에는 11.3% 등 매년 증가했다. 특별히 증세하지 않았는데도 세입 여건이 개선된 것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 후 1년여 동안 두 차례 추경으로 만 13조 5000억 원을 썼는데 국가채무는 한 푼도 늘지 않았다. 내가 재임 시절 세운 계획에 따라 2017년 세수가 집행된 덕분이다. 이처럼 예전에 내가 주창한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비판도 많았지만 과세 형평성을 현실화하고 재정 건전성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 채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어떤 사업을 추진하다가 힘들어지면 공기업에 떠맡 긴다. 그러면 공기업 부채가 늘어나게 되지만 정부는 책임의 식이 없다. 나중에 공기업 측에 왜 이렇게 부실하냐고 따져 물으면 "정부가 하라는 것을 해서 이렇게 됐다"며 책임을 떠넘 기기 십상이다. 최근의 한전 부실 문제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정부 사업과 공기업 사업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도 조심하고, 공기업도 책임의식을 가지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국가 살림을 아끼고 재정을 건전히 한 것은 예전에 부모님을 보면서 자란 영향도 있다. 아버지의 국정철학이나 살림살이 낭비를 싫어하셨던 어머니의 영향이다. 내가 대통령 취임 후에도 청와대에서 늘 불을 끄고 다녔던 습관도 그런 데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재정 건전성에 신경을 바짝 쓴 결과 내가 임기를 마치게 된 2016년 당시 초과 세수는 10조원에 육박했다. 이렇게 쌓인 돈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매우 방만하게 운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선 국가부채율이 50%를 넘겼다. 정치인들이 말로는 항상 '피같은 세금'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집권하면 너무나 쉽게 세금을 쓰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