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간부의 증언
2022년 7월 2일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작은 위령제를 지냈다. 위령제에서는 어린 두 조카의 편지를 대신 읽었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은 조카가 아빠에게 쓰는 편지... 초등학교 3학년 조카의 편지를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그립고 보고 싶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아빠, 다시는 듣지 못 할 아빠의 목소리. 아이들의 편지 두 장에는 아빠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아빠께
아빠, 저 00이에요. 아빠께 평소에 잘못해드린 것 같아 항상 죄송해요. 그리고 같이 공원도 가고 같이 갔을 때 정말로 재밌고 행복했어요. 저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빠도 잘 지내시죠? 제가 평소에는 말 잘 안 들을 때도 있지만, 저는 누구보다 아빠를 정말 정말 사랑 해요. 아빠도 아시죠? 아빠도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아빠, 정말 정말 아주 많이 사랑해요
2022년 7월 1일. 아빠의 영원한 딸 00 올림
간단한 위령제를 지내고 소연평도 사고 현장을 다시 둘러 보러 갔다. 소연평도 사고 해역에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원래는 20여 명 이상이 함께 가기로 했지만, 기상 상황을 고려하여 최소 인원이 가기로 했다. 사고 해역에 다가가니 "형 나 억울해서 못 가겠어요. 형이 빨리 해결해줘요."라고 말하던 꿈속에서 동생의 절규가 다시 귓전을 때리는 듯해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고 해역에 이르러서는 목숨 걸고 헌신했던, 묵묵히 우리 해상에서 불법 조업 단속과 계도에 힘썼던 동생을 위해 생전에 좋아했던 포도, 커피, 담배를 어둡고 차가운 바다에 던 져주었다. 하태경 의원과 의원실 보좌진, 김진형 전 국가위기대응센터장, 김기윤 변호사, 해수부 직원들, 문경복 옹진군수, 연평도 관계자의 배려와 도움으로 이틀간의 현장 조사를 마치고 인천항으로 복귀했다
7월 5일
위령제를 지내고 사고 현장에 다녀온 이틀 뒤 북한 전문 매체인 'Daily NK'에 대준이가 북한군에 월북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북한 간부의 증언과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Daily NK'가 인터뷰한 북한 간부는 "남측 인원이 우리 영해로 넘어온 이유가 표류라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 군은 규정과 교범대로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북한 당국도 이 씨가 표류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달리 북측 영해에 달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간부는 이대준 씨가 당시 월북 의사를 밝혔냐는 질문에 "남측 인원을 발견하고 우리(북측 해군 병력)가 월북하겠다는 것인가 물었지만 그냥 살려달라고만 했다."라고 답했다.
북한 간부와의 인터뷰
•질문 | 피살된 남한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 경비정과 맞닥뜨렸을 때 북측 군인들에게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무엇인가.
•답변 | '살려달라'는 말이었다. 남측 사무원(공무원)이 발견됐을 때 우리 군을 보고 '살려달라' .'도와달라'라는 말을 반복했다. 개인 자료를 물었을 때 자신이 남측 공무원이라고 했다. 우리가 월북 하겠다는 것인가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살려달라고만 했다. 침착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질문 |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살한 이유가 무엇 인가.
•답변 I 평민이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남조선 일반 인민을 제외한 군대, 사무원들은 전부 적으로 규정 한다. 또한 작전 해수역으로 들어온 적군 사무원을 우리나라 방역 규정과 해안 규정대로 처리했을 뿐이라는 것이 군의 결론이다. 군은 당에서 남조선과 대화를 하든 협력을 하든 모든 사안을 전시처럼 처리한다는 게 기본이다. 특히 연평도 사건 이후 해군 8전대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더욱 명확하게 강조된다. 남측 인원이 우리 영해로 넘어온 이유가 표류라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 군은 규정과 교범대로 한 것뿐이다.
•질문 | 지침대로라면 영해 침입자를 발견한 즉시 사살했어야 하지 않나. 왜 이 씨를 발견한 지 여섯 시간 뒤에야 사살했나.
•답변 | 만약 우리 측 인원이었으면 즉시 사살했을 것이다. 국경 완충 지역에 들어설 경우 사살하라는 지침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주민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상부에 상황을 보고했고, 이에 대한 지침을 기다렸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전염병과의 대치 상황으로 인해국경과 전연(전선), 해안, 공중 모든 곳이 전쟁터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코로나가 들어와서 경험을 해 봤으니 그냥 센 감기 수준이라고 알지만, 당시만 해도 걸리면 멸살당하는 것처럼 당에서는 포치(지시)를 했다. 생포하는 순간 그와 접촉한 모든 기구, 장비. 군인들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는데 생포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대상자는 괴뢰 기관에 복 무하는 사무원이고 어부나 평민도 아닌데 우리 해안처리규정 대로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질문 |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라는 통일전선부 통지문을 통해 남측에 직접 사과의 뜻을 전했다. 북측의 규정대로 영해 침입자를 사살한 것이라면 김 위원장이 직접사과할 필요도 없지 않았나. 김 위원장이 이러한 뜻을 밝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답변 | 그 속뜻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전부가 위임받아 보낸 통지문이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상 이러한 통지문을 보내는 게 우리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통전부 가 주체적으로 발신한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이런 내용은 일반 주민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 군부대에서도 모르는 사안이다.
•질문 |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을 재조사하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답변 I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규정대로 처리했고 앞으로 그런 일이 생겨도 똑같이 처리할 것이다. 오직 우리는 상부의명령 지시와 규정대로 움직인다. 개인의 생 각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상부의 명령 지시가 지상 과업이다.
남조선 사무원에 대한 문제이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남조선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이 인터뷰가 사실이라면 동생은 북한군을 만났을 때 '월북' 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준이가 북한군에 월북 의사를 밝혔다는 애기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짓말일까. 남쪽에서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했다
지난 6월 말에 국회 더불어민주당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으나 그 후 협조는 없었다.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은 색깔론과 음모론을 주장하며 우리 유족을 향해 2차 가해, 3차 가해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 한 나는 7월 5일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서를 서울중앙 지검에 접수했다 접수에 앞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나와 김기윤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 공개에 관한 민주당 당론 채택 불발의 입장문 낭독,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대통령기록물 공개 의결 안건에 직권 상정 요청,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서 설명, 강건작 육군6군단장(전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의 참고인 조사 요청 등을 브리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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